음악을 위해 열정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건가요?

어느날 하루의 일과를 되돌아봅시다.

밤 10시. 퇴근 길이던, 하교 길이던,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길이던. 밤 늦게까지 열려있는 동네 음반 가게를 살펴보고 앞에 놓여있는 신보를 보고 혹 해서 들어가 봅니다. 아니, 그냥 들어가서 보는 것만으로 좋으니까요. 그리곤 아저씨에게 물어보죠. 앨범 새로 나온 거 있어요? 그럼 새 앨범을 추천해주기도 하고, 아니면 그냥 돌아봐도 좋았어요.

언제적 일이냐고 하면 근 10년은 된 거 같습니다. 어느덧 군대를 다녀오고 그 동안 IMF는 지나고 인터넷은 보급되고 음반 가게는 점차 사라지고. 제가 어렸을 때 자주 가던 음반 가게는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지만 제가 이사 간 관계로 더 이상 그 가게에 발길이 닿지는 않게 되더군요. 작은 아버지의 선배가 운영하시는 가게였는데요.

그 음반 가게에는 기억이 많습니다. 제가 봄여름가을 겨울 CD를 산 곳이고, 봄여름가을겨울 LP를 샀었죠. CD 플레이어만 있고 LP 플레이어는 없었음에도 그 반짝이는 앨범을 보는 것만으로 행복했습니다. 30cm의 큰 LP. 그 안에 든 커다란 반짝이는 포스터. 지금은 LP는 어딘가에 처박혀있지만 그때의 감상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친구랑 같이 한 장씩 사서 학교 교실에 있는 사물함 안에 놓고 반짝이는 LP 껍데기를 보면 좋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얼마뒤였던가. 이야기를 하다보니 작은 아버지와 같은 고등학교이고 학교 다녔을 때도 안면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그럴 때도 있는 거죠.

제 기억이 맞다면, 그때 CD를 6000원인가, LP를 4000원인가 샀던 거 같습니다. 고등학교 때 이야기니까 15년쯤 전? 지금 가격을 보니 8,800원이군요. 같은 CD가 말입니다. 무려 50%나 올랐습니다. 덜덜덜. 아 7000원에 산 거라고 보면 25%군요. 어느 쪽이 맞는 걸까요. 뭐, 이건 별로 중요한 건 아니네요.

지금은 이런 기억이 없습니다. 버스 정류 장에서 내려서 집까지 오는 길목 어디를 찾아봐도 음반을 파는 곳은 없습니다. 찾아가야만 하죠. 인터넷이던, 대형 쇼핑몰이던 어딘가를 찾아가야만 음악을 즐길 수 있습니다. 가격이 문제가 아니라 이런 불편함이 생겼습니다. 이게 큰 차이인 거죠. 세상이 바뀐 겁니다. "원하는" 음악을 들으려면 수고를 해야 합니다. 새로 나온 음반도 따로 찾아봐야 하고 뭘 살지 고민해야 하고 찾아서 사야하고. 찾아서 듣고 찾아서 구해야만 합니다.

자, 이쯤이면 딴따라 음악이 어떻고 MP3가 어떻고 나오길 기대하시리라 봅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자는 건 아닌 거죠. 그냥 감상적인 넉두리입니다. 그냥 더 귀찮아지고 더 노력해야만 하고. 그러다보니 그때 들었던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지금의 열정이 좀 다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때는 그저 음악이 좋았다면, 이제는 자신의 취미로 인정하고 취미로써 음악을 즐기는 거 같습니다. 이런 장벽이 있기 때문에 그 장벽을 열정 이상의 무엇으로 넘어야 하죠. 그러다보니 더 열광적으로 음악을 찾게 되고 구해서 듣고, 공연이 있다고 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꼭 찾아서 보고. 어떤게 좋은진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손쉽게 구할 수 있던 것이 좋은가, 지금처럼 열정 이상의 노력을 쏟는 것이 좋은가. 모르겠군요.

신세한탄? 세월타령? 나이 먹은 티? 뭐 그런 거 다 필요 없는 이야기고 좋으니까 듣는 거죠. 그러니까 열정을 쏟는 거고 노력하는 거고, 난리 피우고 몸이 아프던 뭐던 공연 보러 가고 그러는 거 아니겠나요.

어쨌든 중요한 건
완전 소중 에밀리.
뭐 그런 거죠.

by 南無 | 2006/02/28 02:01 | Music | 트랙백(1)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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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이오공감의 흔적 at 2006/02/28 12:02

제목 : 2006년 2월 28일 이오공감
[HR]첫사랑과 첫직장에 대한 편견을 버려.  by oojoo가끔 사랑과 직장을 비교해보면 매우 비슷한 점을 발견하곤 해서 깜짝 놀라게 된다. 주변 사람들의 직장생활과 애정생활(?)을 비교해보면 무척이나 비슷한 점과 행태를 발견...2002년 월드컵! 어떻게 응원하셨나요?  by 채다인이때까지는 일본도 분위기가 참 좋았는데 터키한테 지고 16강에서 탈락하면서 월드컵 분위기가 버블경제 무너지듯 무너지는 바람에 참 재미가 없었죠...음악을 위해 열정 이상의 노력이 필요한 건가요?  by 南無밤 10시. 퇴근 길이던, 하교 길이던,......more

Commented by ddudol at 2006/02/28 07:09
어느순간부터인지 앨범을 살 수 있는 기회가 극히 줄어들더군요. 취미의 변화랄까. 예전엔 테이프도 많이 모았는데 말이죠.
Commented by Needle at 2006/02/28 13:52
CD 열심히 사모으고 있습니다. 요즘은 왠지 제가 고집 부리는 기분이 들긴 하지만요... ^^ 예전에 자주 다니던 음반가게들 중에 폐업하지 않은 곳들은 편의점을 겸업한다든가 하는 형태로 바뀌어서 생존을 모색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씁쓸하기도 해요.
Commented by FAZZ at 2006/02/28 14:21
이오공감 타고 들렸습니다. 일단 미디어가 cd에서 mp3로 변한 것을 뒤로 돌릴 생각은 없습니다만 cd를 돈 주고 사는 사람을 돈낭비 하는 것을 보는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음반점은 앞으로 더더욱 찾기 힘들어질거 같군요....
Commented at 2006/02/28 14:3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릴루 at 2006/02/28 17:10
동네에 작은 레코드가게가 있었던것. 지나가다 괜찮은 음악이 나오면 들어가 '지금 나오는거 주세요'라고도 해보고, 라디오에서 우연히 녹음한건데 제목을 모르면 들고가 단골집 아저씨한테 틀어주고 이게 무슨 곡인가요..를 묻곤했던 기억도 납니다. 동네서점 없어지듯.. 그러네요. 음반가게가 없어진게, 새삼 섭섭하네요..
Commented by 금숲 at 2006/02/28 19:12
;ㅂ; 음반 살돈이 없으면 악보라도 사서 나오곤 했는데...
하아... 이제는 음반한장 사려면 인터넷이 제일 쉬운..
그러나 둘러보기 같은건 자주 할 수 없는 사치가 되었죠.
Commented by ㅂㄹ at 2006/02/28 22:58
음반사러 HMV나 타워레코드까지 빨빨빨 기어가는 사람 -ㅅ-)
Commented by 시북군 at 2006/03/01 07:08
그래서 옛날가요들이 그나마 좀 싼거였군요. 과거의 향수를 못 잊고 몇주전 노이즈의 음반을 샀는데 그때는 그 가격이 재고떨이때문에 싸게 판줄 알았습니다.(장당 7500원인가...)
Commented by 파란양 at 2006/03/01 09:05
기억에 남는건,

성공에 필요한 세가지에 대한 이야기죠.

재능,노력,헌신 .. 이 세가지중에 하나라도 부족하다면 성공할 수 없다. 라고 말이에요.
Commented by 南無 at 2006/03/01 20:14
ddudol// 중학교 때는 테이프로 듣다가 고등학교부터 CD로 옮겨온 기억이 있습니다. 테이프로 샀던 걸 CD로 모두 사면서 눈물 흘린 기억이... CD는 남아있지만 테이프는 다 버렸었어요.

Needle// 이사를 하면서 멀어진 뒤로는 대형 음반 가게나 인터넷만 쓰고 있습니다. 이런 소매점의 상태는 서점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FAZZ//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 "원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노력하는 게 귀찮다는 이야기입니다. ;; 그냥 주문하면 다음날 탁 날라오는 거 그리 안불편하고 직장 근처에 큰 음반점이 있어서 그럭저럭입니다.
Commented by 南無 at 2006/03/01 20:16
릴루// 맞아요 그렇게 물어볼 수 있었죠. 라디오 녹음해서 이 음반 주세요도 할 수 있었고. 지금은 그걸 직접 찾아야만 하죠...

금숲// ...아 그러고보니 악보 같은 건 어디서 사야하죠?...

ㅂㄹ// 음반 사러 에반즈로 빨빨빨 걸어감;

시북군// 처음 CD 나왔을 때 5~6천원 했고 꾸준히 오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파란양// 그냥 야근하다가 후딱 쓴거라 두서 없는 이야기입니다^^
Commented by 금숲 at 2006/03/03 03:14
예에 악보 요즘은 몇몇 서점에서 팔더군요. 교보같은데도 있어요.
Commented by 南無 at 2006/03/03 12:52
금숲// 서점 역시 나갈 일이 없다보니 ;; 인터넷의 폐해라면 폐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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